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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예술을 꽃피우는 길림시아리랑합창예술단, 꿈에 날개를 달았다

편집/기자: [ 차영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11-05 20:56:03 ] 클릭: [ ]

다가오는 1127일은 길림시조선족아리랑합창예술단 5주년이 되는 기념일이다.

기념일 행사 준비에 다망한 협회 김춘옥 단장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해 협회의 혁혁한 성과들을 우선 꼽았다.

조선 평양의 무대에 서다

“201869일부터 16일까지 영광스럽게 중국인민방북문화교류단’ 선발되는 영광을 지니게 되여 항미원조전쟁 승리 65주년 기념 행사 공연무대에 서게 되였지요.”

 협회 단원들 조선 방문길에서 기념촬영

협회의 20 단원이 평양의 공천단구락부에서 조선의 예술인들과 무대에 서게 되였다.

단원들은 교류단과 함께 중국인민지원군사령부, 모안영렬사릉원을 참배하고 조선의 만수대, 김일성광장, 평양지하철 명소도 참관하는 잊을 수 없는 조선 방문 추억거리를 만들었다.

전국 합창시합 금상의 월계관을 따다

2018 622일, 중국음악가협회의 주최하에 내몽골에서 열린  전국 제6회 합창시합’  묘족, 뚱족, 장족, 위글족, 몽골족 전국 각지 48개 팀이 참가했다.

그번 시합에 유일한 조선족 대표팀으로 참가한 길림시조선족아리랑합창예술단은 52 단원으로 팀을 묶었다.

 
내몽골에서 열린 ‘전국 제6회 합창시합’ 무대에 선 단원들

협회의 대합창  <아리랑련곡>,  <여러 민족 인민 새 노래 부르네> 대회 금상을 받아안았다.

이번 대회에 귀빈으로 참가한 한국인사들이 공연이 끝난 후 특별히 합창단을 찾아와서 엄지손가락을 내들며 아주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였다며 축하를 아끼지 않으며 다음 기회에 한국의 합창 행사에 초대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향향 국제무대에서 한번의 월계관을 따다

1011일, 중국로년문화추진중심의 주최하에 향항에서 열린 ‘중국꿈.석양미’ 국제중로년예술시합에 요청받은 길림시조선족아리랑합창예술단은 무도  <송화강에 북장고 울려라> 종목으로 이번에도 금상의 월계관을 땄다.

 
향항에서 열린 국제중로년예술시합 무대에서

기자: 조직위원회에서 어떤 경로로 우리 길림시조선족아리랑합창예술단의 존재를 알고 초청장을 보냈는지요?

김단장: 지난번 내몽골 전국 제6회 합창시합에 참가했던 경력이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주최측에서 사실을 알고 협회에 초청장을 보내왔죠. 향향에 34명의 성원들을 이끌고 참가하게 되였는데 려비와, 식대   제반 비용을 모두 주최측에서 제공했어요. 금상을 따서 저그만치 3,000향항돈 상금까지 받았구요.

 
향항중로년예술시합 무대에서 표창장을 받은 협회 김춘옥 단장(우1)

김단장의 소개에 의하면 2018년 이전 아리랑합창예술단이 거둔 성과는 적지 않았다.

2014 목단강에서 열린 전국조선족농악무시합에서 기타 지역의 꼴꼴한 선수진을 제끼고 예상외로 1등을 따내여 상금 5천원을 받았다.

2015년에는 길림성 제8회장백의소리‘ 합창시합에 참가해 은상을 받았다..

2016 1 중앙텔레비죤방송국의 ‘우리의 중국꿈프로에 출연했다.

2017년에는 1월 길림국제무송빙설예술시합에서 합창부문 우수조직상, 무도부문 금상을 받았다.

그리고 길림시조선족민속단오제, 길림시알라디농민예술절, 길림시조선족신춘문예공연 크고 작은 무대에 오른 경력은 수도 없다.

 
길림시와 길림성의 각종 행사 무대에 선 단원들

대목에서 불과 설립 5년 만에 리퇴직 인원들로 구성된 민간단체가 이토록  빛나는 성과가 있기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많이 궁금했다.

2013 길림시공안국 치안지대에서 퇴직한 김춘옥은 퇴직 후 2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궁냥하던 차 마침 길림시조선족합창단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현재 명예단장인 박순옥, 부단장 박명분, 총무 남영순 초기 맴버들의 동분서주하에 전원 길림시 조선족 리퇴직 인원들로 구성된 아리랑합창예술단이 드디여  1127 고고성을 울렸다.

합창단의 설립은 길림시민족사무위원회와 길림시조선족군중예술관의 대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퇴직전 사업터에서 매번 행사 때면 가수로 무대에 섰던 김춘옥이 단장을 맡았고 유명한 지휘가인 길림시 조선족 음악인 리성태가 예술총감독을 맡았다.

만약 길림시조선족군중예술관 전경업 관장의 대폭 지지가 없었더라면 우리 협회의 오늘이 없겠죠.“

길림시조선족군중예술관에서 매주 3 조선족군중예술관의 활동실을 내여주었고 성악과 무도 전문보도원을 파견해왔어요.”

복장, 소품 모든 경비를 자체로 해결해야만 했던 당시 곤난이 첩첩했지만 모두가 하나처럼 뭉쳐 한가지한가지씩 풀어나갔다.

초창기 10여명의 단원에서 전성기에는 150여명으로 늘어났으며 협회에 고음부, 중음부, 남성부, 무도부 4 부서를 설립했다.

 
 
농악무 공연으로 목단강조선족농악무시합의 1등상을 받아안았다
 

비록 단원들의 들락날락으로 애를 먹긴 했지만 협회는 고음부 부장 최순실, 중음부 부장 황석자, 남성부 부장 김도준, 무도부 부장 강금순, 상모대 대장 박영철을 위수로 골간단원들을 묶어세웠다.

현재 협회에는 50여명의 단원들이 남았다.

50세에서 70세까지 평균 년령 65 좌우의 단원들이지만 원정공연 때마다 몸에 버거운 소품트렁크들을 각자 끌고 다닌다.

모두가 자신들의 애호과 취미를 되살려 활기차게 사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협회 활동을 통해 젊은 시절 꿈을 이제야 이루는 기분입니다.”

다년간 협회 비서장을 맡아 물샐틈없이 사업해온 70 권점순씨의 얘기였다.

민족문화의 전승과 더불어 팀워크로 꿈을 이루는 것 길림시조선족아리랑합창예술단의 구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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