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吉林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6)졸라편 > 전국우승50주년

본문 바로가기
순위표
순위 팀이름 점수
1 상해상항 30 21 5 4 68
2 광주항대 30 20 3 7 63
3 산동로능 30 17 7 6 58
4 북경국안 30 15 8 7 53
5 강소소녕 30 13 9 8 48
6 하북화하 30 10 9 11 39
7 상해신화 30 10 8 12 38
8 북경인화 30 9 10 11 37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6)졸라편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룡| 작성일 :18-12-05 09:14| 조회 :1,341| 댓글 :0

본문

연변사람이 된 자이르초원의 흑인소년―용병 졸라의 이야기


f5ee0ad2b493f3e08b24236c566ec92c_1543972
졸라.

  

아프리카에서 왔다면 많은 사람들은 사하라사막을 떠올리고 사막에서 맨발로 달리는 흑인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졸라가 태여난 자이르(1997년부터 꽁고민주공화국)의 서남부 적도에 위치한 반둔두성은 열대우림기후 지역으로서 열대삼림과 열대초원이 이어진 아름다운 곳이다. 

 

1970년 여름, 수도 킨샤사에서 600여키로메터 떨어진 농촌마을에서 태여난 졸라는 어려서부터 축구에 매료되여 저녁 늦게까지 동네 아이들과 뽈을 차군 하였다. 그 고장 아이들은 연변의 아이들보다 빨리 성숙하는지 다섯살에 소학교에 입학한 졸라는 뽈도 잘 찼고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였다. 

 

“학교마당이나 마을의 공지에서 백여명의 어린이들이 몰켜 뽈을 찼지요. 내가 뽈을 몰고 아이들 속을 요리조리 헤쳐나오는 것을 보고 엄마는 엄지손가락을 내들었고 아빠는 그만 차라고 소리를 질렀지요.” 

 

f5ee0ad2b493f3e08b24236c566ec92c_1543972
연변주정부 리룡희 전임주장과 대화하고 있는 졸라. 

 

교육자인 졸라의 부모는 졸라의 미래를 두고 언성을 높일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어머니는 축구선수가 꿈인 졸라의 편을 들었고 아버지는 훌륭한 대학에 가서 의사로 될 것을 바랐던 것이다. 

 

소학교와 중학교 시절에 졸라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꼴을 넣으며 학교축구장의 스타로 되였고 또 학습성적도 앞자리를 차지하여 고중을 마치는 1987년엔 킨샤사대학에 입학지원서를 넣기까지 하였다. 그를 더욱 훌륭한 환경에서 공부시키기 위하여 그의 아버지는 가정을 이끌고 킨샤사로 이사까지 왔으나 이미 열일곱살의 청년이 된 졸라의 주장을 굽힐 수 없었다. 

 

킨샤사의 유명한 축구구락부인 비타구락부(VITACLUB)를 헐금씨금 찾아간 졸라는 복잡하고도 세밀한 입단 전 시험을 무난히 통과하고 구락부에 입단한 것이다. 대학을 다니기 위하여 수도에 올라온 아들이 축구구락부에 입단하자 그의 아버지는 너무도 섭섭하여 몇년 동안 그와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비타구락부에서 졸라는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즐거웠다. 엄격한 체력훈련도 그는 즐거웠다. 매일같이 혹독한 훈련이 이어졌지만 그의 얼굴은 항상 웃음이였다. 혹간 청년팀을 대표하여 경기를 치르는 날이면 뜬눈으로 밤을 새울 정도로 흥분되기까지 하였다. 그러던 그가 1년 만에 구락부를 대표하여 경기를 치르게 되였고 데뷔전에서 대방의 수비수를 따돌리고 첫꼴을 작렬시키면서 대뜸 킨샤사축구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열여덟살에 축구유망주로 되였던 것이다. 

 

f5ee0ad2b493f3e08b24236c566ec92c_1543972
연변팀시절의 졸라.(방태호 찍음) 

 

f5ee0ad2b493f3e08b24236c566ec92c_1543972
연변팀시절의 졸라.(방태호 찍음) 

 

1994년엔 국가축구대표팀의 부름을 받고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을 입게 되였는데 1996년까지 국가대표팀의 공격수로 맹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그 시기 자이르의 국내형세는 매우 복잡하였다. 

 

1965년에 쿠데타로 대통령에 오른 모부투가 1990년대초에 경제위기를 맞으며 서방 채권국들의 강한 압력하에 다당제 민주주의와 권력분배를 수용하였으나 1997년 5월, 로랑ㆍ카빌라가 이끄는 반군에 의해 권력을 내려놓아야 했다. 바로 졸라가 한창 축구장에서 두각을 나타낼 때 그의 조국은 심한 내전으로 나라가 엉망이 되였고 모부투 정권하에서 수십년 동안 루적된 경제적 실책과 정치적 부패는 이 나라의 경제기반을 황페하게 만들었는바 그 결과 자이르는 전 세계에서 생활수준이 가장 렬악한 나라로 전락했다. 

 

졸라가 연변행을 결심한 시점도 바로 그 때였다. 국가팀 선수였지만 후진국이다 보니 로임도 제대로 받지 못할 때가 많았다. 1997년 1월, 이미 결혼하고 아들까지 둘을 둔 그는 생계를 위해 한국 중개인의 소개로 한국 성남일화축구구락부에 와서 훈련하다가 곤명으로 날아와 연변오동팀에 합류하였다. 첫해에 다섯꼴을 기록하면서 연변축구팬들을 기쁘게 할 때 그의 조국은 국명을 꽁고민주공화국으로 개명하였고 훈련마저 제대로 하지 못하던 국가대표팀에서는 그와 련락할 방법이 없어 국가팀에서 그의 이름을 빼버렸다. 

 

f5ee0ad2b493f3e08b24236c566ec92c_1543972
연변팀시절의 졸라.(방태호 찍음) 

 

f5ee0ad2b493f3e08b24236c566ec92c_1543972
연변오동팀 대 대련만달팀과의 경기에서의 졸라.(방태호 찍음)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야 조국에 있는 가족이 근심걱정 없이 살 수 있다.’ 그 시기 졸라의 마음속에는 오직 가족과 그들의 생계였다. 그의 사정을 헤아린 구락부에서는 1998년 시즌에 그와 방근섭, 리시봉이 갑B팀이였던 천진태달에 가서 뽈을 차는 것을 비준하였다. 그 후 다시 연변팀에 돌아온 졸라는 1999년, 2000년 시즌에서 네꼴과 일곱꼴을 기록하였으며 35세 나던 2005년에는 열세꼴, 2006년과 2008년에는 각각 아홉꼴과 여섯꼴을 기록하면서 연변팀을 위해 혼신을 불태웠다. 

 

연변팀에서 뽈을 차면서 가장 잊을 수 없는 경기를 꼽으라면 그는 최은택 감독의 지도하에 갑A 4강의 기적을 올린 1997년 시즌의 한 경기를 꼽는다. 바로 8월 3일, 연길시인민경기장에서 치른 제13륜 대련만달팀과의 경기이다. 그 날 경기에서 전반전까지 최고강팀과 0:0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대등한 경기를 펼쳤는데 경기장에는 5만여명의 축구팬들이 운집했다. 서로 절주 빠른 맞공격을 펼치던 후반전 65분경, 고종훈선수의 그림 같은 가랭이패스가 달려가는 졸라의 앞에 이어졌다. 민첩한 졸라가 가동작으로 대방수비수를 따돌리고 꼴문을 향해 슛― 천금 같은 꼴이 터졌다. 순간, 연길시인민경기장은 환호소리로 들끓었고 졸라는 자이르의 전통춤동작으로 세리머니를 하다가 축하하러 달려온 동료선수들에게 묻혔다. 이 날 경기에서 2:0으로 앞서다가 결국 두꼴을 내주고 비겼지만 졸라는 아직도 생생하게 당시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다. 경기장 밖의 소나무에 매달려 경기를 관람하던 축구팬이 박수를 치고 환호를 하다가 떨어져 크게 상했다는 이야기는 후문이지만 역시 연변의 축구팬들이 그만큼 졸라를 인정했다는 표징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 총명하고 공부를 잘했던 졸라는 프랑스어, 꽁고어, 영어, 뽀르뚜갈어에 비교적 능숙하였는데 중국에 와서 연변, 중경, 천진 등지에서 11년간 뽈을 차면서 한어와 조선어까지 배워 어지간한 대화까지 할 수 있게 되여 어디를 가나 통역이 필요 없다고 말한다. 

 

f5ee0ad2b493f3e08b24236c566ec92c_1543972
용병 쿠리바리선수를 훈련시키고 있는 졸라. 

 

2008년에 연변에서 퇴역한 졸라는 2009년과 2014년에 연변팀 조리감독을 맡았고 2016년부터 현재까지 연변체육운동학교에서 축구꿈나무들을 양성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가족에 대해 졸라는 안해와 아들들은 모두 축구를 좋아하고 있으며 또 그만큼 연변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현재 안해는 연변대학에서 외국어교수로, 큰아들은 연길시제2고급고중(조선족학교), 둘째아들은 연길시4중(한족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명실공히 연길사람이 된 자이르의 초원에서 달리던 소년공격수 졸라의 이야기이다. 

/길림신문 김룡 김태국 기자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국우승50주년 목록

Total 40건 1 페이지
전국우승50주년 목록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10)장경화편 인기글 끈질기고 완강한 경기작풍의 ‘무쇠방패’―원 연변오동팀의 주력수비수 장경화 장경화. 1994년부터 중국의 직업축구경기인 갑A련맹경기가 전국적으로 정식으로 시작되고 축구경기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축구의 고향’ 연변에도 세찬 축구열풍이 불었다. 당시 연길시인민체육장은 경기 때마다 빈자리 하나 없을 정도로 구경군들로 인산인…(2018-12-14 08:25:28)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9)리시봉편 인기글 탈곡장축구선수 갑A무대를 주름 잡다―고홍파를 이기고 최우수공격수에 선정된 리시봉의 이야기 리시봉. “그 땐 논밭이나 탈곡장이 우리 축구장이였지요.” 걸걸한 성격에 묻는 말에 곧잘 우스개로 대답하는 리시봉(1973. 9. 27—)씨가 하는 말이다. 연길시 장백향 동광촌에서 태여난 리시봉은 어려서부터 축구를 즐겼다. 수…(2018-12-12 09:45:42)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8)박문호편 인기글 갑A 첫 원정승을 일구어낸 공신―― 원 길림성축구팀의 주력공격수 박문호 박문호. 청소년축구양성에 모든 걸 바치고 있는 박문호. “소학교 4학년 때까지 정규적인 축구지도를 받아보지 못했지요.” 보기에도 시원시원하게 생긴 박문호가 언제부터 축구를 시작했는가 하는 물음에 대답하는 말이다. 1968년 1월 24일에 룡정시…(2018-12-10 08:50:52)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7)리찬걸편 인기글 북경조선족축구운동의 일등공신―― 원 길림오동팀 리찬걸선수 북경조선족축구협회를 이끌고 8년 동안 땀동이를 리찬걸. 길림오동축구팀의 선수로 활약하다가 은퇴한 뒤 북경에 가서 북경조선족축구협회를 이끌고 현재까지 8년간 열성을 다하고 있는 리찬걸은 고향이 료녕성 심양시이다. 심양시 소가툰에서 태여나 평안남도 말씨를 구사하는 …(2018-12-08 09:45:48)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6)졸라편 인기글 연변사람이 된 자이르초원의 흑인소년―용병 졸라의 이야기졸라. 아프리카에서 왔다면 많은 사람들은 사하라사막을 떠올리고 사막에서 맨발로 달리는 흑인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졸라가 태여난 자이르(1997년부터 꽁고민주공화국)의 서남부 적도에 위치한 반둔두성은 열대우림기후 지역으로서 열대삼림과 열대초원이 이어진 아름다운 곳이…(2018-12-05 09:14:39)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5)최광일편 인기글 연변축구 영광의 시절에 퇴역한 축구선수 최광일 최광일. ‘97’갑A련맹경기는 연변팀은 물론 연변의 허다한 축구팬들에게 평생 잊혀지지 않는 감동과 격정의 시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해 시즌에서 연변팀에서는 한국감독 최은택의 인솔하에 련속 9껨의 경기에서 불패의 신화를 창조하고 최종 갑A리그 4강이라는 훌륭한…(2018-12-02 11:34:32)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4)리홍군편 인기글 105메터 그 곳의 마지막 수비수 리홍군 리홍군. 벌써 20년이 지난 그 날의 정경을 어제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리홍군은 국내외의 경기에서 발로 무수히 뛰였지만 인상에 제일 남는 건 그 날의 경기라고 말한다. 그 날 길림성축구팀에서는 제7차 전국운동회의 축구경기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다크호스’로 출현하고 있었다. …(2018-11-28 09:59:35)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3)리광호편 인기글 갑A리그를 주름 잡은 주장―1990년대 연변팀의 핵심중앙수비수 리광호 리광호. 지난 세기 90년대에 중국축구의 최고무대인 갑A리그에서 연변팀의 든든한 주장으로 뛰면서 중앙수비선에서 맹활약하던 축구선수가 있다. 3번 유니폼을 입고 연변축구의 궐기와 발전에 자기의 젊음을 아낌없이 바쳤던 공신, 수많은 축구팬들에게 키 크고 …(2018-11-26 08:50:50)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2)김해수편 인기글 소년팀의 ‘뚝곰’―김해수가 돌아보는 축구인생 김해수선생. “솔직히 말하면 70년대에는 흔들거리며 무미하게 보냈지요…” 땡볕, 여름의 7월 9일, 낮온도는 32℃이다. 연변대학 로인활동실에서 만난 김해수(金海洙, 71세)선생의 웅장한 몸체와 웃음꽃이 핀 실눈에 반한 필자는 김해수옹의 첫인상이 호방하고 허심하며 침착하…(2018-11-21 11:14:21)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1)권명률편 인기글 《영광의 주인공들 찾아서 》후속보도 오늘부터 시작 편집자의 말2015년에 연변축구구락부 설립 60주년, 연변축구 전국 우승 50주년을 맞으며 길림신문사가 야심차게 기획했던 대형기획계렬보도《영광의 주인공들 찾아서》는 그해에 《길림신문》에 륙속 발표되면서 인기를 끌었다. 1965년 전국 우승의 주인공들인 부분적 대표원로들을 …(2018-11-19 10:41:22)
[연변축구50년27]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방어수-… 인기글 연변팀 전국우승 50돐기념 계렬보도《영광의 주인공들 찾아서 》(27) 원 길림성축구팀의 중앙방어수 박광순에 대한 이야기 11월 중순 초겨울의 입구에서 원 길림성축구팀의 초창기 중앙방어수로 활략했던 박광순옹을 만났다. 《길림성축구팀의 초창기 멤바에서 저는 항상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선수로 각인받고 있습니…(2015-11-16 10:12:05)
[연변축구50년28]중국축구의 첫 《한류전도사》 인기글 연변팀 전국우승 50돐기념 계렬보도《영광의 주인공들 찾아서 》(28) -1997년 연변오동축구팀 4강신화를 창조한 고 최은택감독 지난 2007년 2월 5일, 연변오동팀(현재 연변장백산팀 전신)을 갑A련맹전 4강으로 끌어올리며 《중국축구의 첫 한류(韓流)전도사》로 널리 존경받았던 고 최은택 감독이 불행하게도 페암으…(2015-10-31 14:11:44)
[연변축구50년26] 중국 최우수 하프선수-고종훈 인기글 연변팀 전국우승 50돐기념 계렬보도《영광의 주인공들 찾아서 》(26) 많은 축구선수와 팬들은 우리 민족의 축구영웅 고종훈이라면 모두 잘 알고있는 선수이다. 22번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빈 고종훈은 길림성팀과 국가팀의 중견선수로 중국의 축구발전을 위해 마멸할수 없는 공헌을 한 축구명장이다. 연변…(2015-10-29 10:08:46)
[연변축구50년25]김광주-연변축구는 뿌리 깊은 나무 인기글 연변팀 전국우승 50돐기념 계렬보도《영광의 주인공들 찾아서 》(25) 1. 평강벌의 축구소년으로부터 프로축구선수로 연변팀력사에서 가장 오래 주장으로 있은 사람을 뽑으라면 1992년 길림성팀으로부터 길림삼성팀, 연변현대팀, 연변오동팀까지 쭈욱 주장으로 있은 김광주를 뽑아야 할것이다. 1997년 신체상황으…(2015-10-27 09:02:28)
[연변축구50년24]연변축구에 인생을 건 사나이-고훈 인기글 연변팀 전국우승 50돐기념 계렬보도《영광의 주인공들 찾아서 》(24) 음악인의 아들로 태여나 부모의 강권도 마다하고 오롯이 축구만을 사랑했던 한 사나이, 축구선수로부터 조리감독, 코치, 감독 겸 구락부주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성공과 좌절을 겪었고 또 그 축구로 하여 억울하게 감옥행까지 했던 사나이, 연변축구사상 가장 …(2015-10-22 07:43:32)
게시물 검색

Copyright © 2005 인터넷길림신문 all rights reserved. 吉ICP备07004427号

本社: 長春市綠園區普陽街2366號 Tel: 0431-8761-9812 分社: 延吉市新華街2號 Tel: 0433-253-6131

記者站: 吉林 (0432) 2573353 , 通化 (0435) 2315618 , 梅河口 (0448) 4248098 , 長白 (0439) 8220209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