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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15)윤광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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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룡| 작성일 :18-12-26 08:38| 조회 :2,91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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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동안 한 우물을 파온 키퍼―새 세기 연변팀의 최장수주력기퍼 윤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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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시중앙소학교에서 축구공에 싸인하고 있는 윤광선수.

 

연변팀 축구사상 가장 오랜 시간 꼴문대를 지켜온 키퍼 윤광, 십수년의 사계절이 바뀌여오는 동안 팀의 풍상고초를 함께 헤쳐가며 동고동락해온 그가 지켜온 건 단지 꼴문대뿐이 아니다. 팀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맏형으로서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윤광은 17년 동안 한 우물 파기만 고집해온 ‘우직’하면서도 의리가 넘치는 멋진 사나이로 통한다. 

 

룡정시 로두구진에서 태여나 로두구진조선족소학교에 다녔던 윤광은 키퍼로서의 시작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가 소학교 2학년 때 교내축구시합이 열렸는데 학급에서 키가 제일 컸던 윤광은 학급을 대표하는 키퍼로 나서보겠다고 손을 번쩍 들었다. 또래들보다 키가 컸던지라 어떻게든 막아보겠다는 천진한 마음에서였다. 결국 큰 키가 우세가 되여 키퍼장갑을 끼게 되였는데 그것이 꼴문대와의 인연으로 맺어졌다. 

 

고된 훈련을 거듭해 승부로만 결판을 내야 했던 경기들에서 그가 흘렸던 구슬땀은 얼마였던가! 때로는 등을 기댈 수 있는 훌륭한 친구로, 때로는 발로 차대며 자책도 해봤던 꼴문대와 함께 울고 웃은 20여년 세월, 프로키퍼로 성장하기까지 그가 흘린 수많은 땀방울은 꼴문대가 지켜선 푸른 잔디 우에 흩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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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시즌 경기에서 상대팀 슛을 쳐내고 있는 윤광선수. 

 

우연하게 시작한 키퍼였지만 그는 떡잎부터가 남달랐다. 날아오는 공을 향한 집중력과 판단력은 물론 큰 키를 리용한 점프력과 민첩하게 몸을 던져 공을 쳐내는 그의 자석 같은 두 손은 오랜 시간 동안 키퍼로 활약해왔던 과정에 이미 수도 없이 증명되였다. 

 

키퍼재능이 뛰여났던 윤광이였지만 축구를 유난히 좋아하고 재질을 보였던 친형이 축구를 정식으로 배워보려고 체육학교에 입학하였다가 가정형편으로 1년 만에 다시 농촌으로 내려왔을 때를 생각하니 차마 체육학교에 가겠다는 말을 선뜻 꺼낼 수가 없었다. 큰아들의 축구꿈도 모자라 막내아들의 축구꿈마저 저버리게 할 수 없었던 윤광의 어머니는 작은아들의 키퍼의 꿈만큼은 꼭 이뤄주리라 마음 먹고 로무출국을 결심했다. 막내아들인 윤광은 그 때로부터 체육학교에서 제대로 된 키퍼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시체육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윤광은 5학년 때 룡정시북신소학교로 올라오게 되였다. 비록 열두살 어린 나이에 가족과 집을 떠나 홀로 외롭게 숙소생활을 시작했지만 부모님의 부푼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프로선수가 되려는 꿈은 한시도 저버린 적이 없었다. 일찍 일어난 새가 일찍 벌레를 잡는다는 말이 있다. 윤광은 그것을 땀과 노력으로 체현했다. 차곡차곡 기량을 쌓아오며 흘린 그의 땀과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게다가 청소년기에 이미 188cm로 성장한 훤칠한 키는 프로키퍼로 성장할 수 있는 유리한 신체조건으로 되였고 부지런히 훈련에 림하며 프로키퍼가 되려는 꿈을 더 집요하게 키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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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 동계훈련에서의 윤광선수. 

 

1998년에 그는 당시 연변오동2팀 리호은 감독의 눈에 들면서 연변오동2팀에 합류하게 되였고 이듬해에는 팀을 따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1년 동안 머무르면서 더 깊은 가르침을 받고 돌아와 국가소년팀에 발탁되였으며 그 후로 정식으로 연변팀 주전키퍼로 자리매김하였다. 2000년부터 정식으로 프로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당시 고작 열일곱살 나이로 팀에서 가장 어린 막내선수였다. 

 

1999년 오동팀이 해체된 이후 줄곧 3부리그인 을급리그에서 뛰였던 연변팀, 2004년 그동안 잠들어있던 연변축구가 다시 잠에서 깨여나는 시기를 맞이했다. 그 해 훌륭한 경기력을 보였던 연변팀에서는 드디여 2부리그인 갑급리그로 진출하게 되였는데 당시 연변팀의 꼴문대는 의연히 윤광이 지켜서고 있었다. 

 

그렇게 갑급리그에서의 10년이 다시 흘러가고 2014년에 연변팀은 어쩔 수 없이 사생결단을 해야 하는 시기를 코앞에 두었다. 기사회생을 꿈꿨지만 랭정하고 성적순인 프로리그에서는 순위만이 통하는 법이다. 그 해 연변팀에서는 결국 모진 성적부진을 겪더니 3부리그로 강등하는 고배를 마셔야 했다. 당시 팀의 주전키퍼이자 팀의 주장을 맡고 있던 윤광은 그 누구보다 어깨가 무거워났고 주장으로 팀을 지키지 못했다는 중압감에 자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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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하고 있는 윤광선수. 

 

그러던 중 연변팀에 생각지도 못한 씨나리오가 나타났다. 갑급리그팀들중 한 팀이 해산되는 바람에 연변팀은 갑급에 잔류할 수 있는 희망의 불씨를 얻게 된 것이다. 하여 극적으로 갑급리그의 뒤꽁무니를 부여잡고 턱걸이를 할 수 있게 되였다. 강등의 문턱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연변팀에서는 잡은 기회를 놓칠세라 이를 악물고 더 악착같이 매달리며 투혼을 불살랐다. 악바리근성으로 팀을 지켜내던 연변팀에서는 그 해에 전례 없는 22경기 무패행진으로 국내의 최정상리그인 슈퍼리그 진출꿈을 이뤄내는 력사를 썼다. 

 

비록 그 해 리그초반에 발목부상으로 후보벤치에 앉을 수 밖에 없었던 그였지만 벤치에서도 동료선수들의 용기를 북돋아주며 든든한 맏형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나갔다. 지옥과 천당을 몇번이나 오가던 연변팀과 운명을 함께 해온 윤광은 당시 슈퍼리그로 진출했던 부푼 마음은 시간이 오래 지나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2015년에 윤광은 운동선수대표로 자랑스럽게 ‘연변조선족자치주로력모범’으로 당선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모두 알다싶이 랭정한 프로축구의 세계는 이적시장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 팀에 머무는 17년 동안 윤광한테도 많은 요청이 날아왔다. 피 끓는 나이에 더 큰 무대에서 뛰여보는 그림도 떠올려봤지만 고민 끝에 그의 선택은 늘 나서 자란 고향의 팀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러다 보니 현재 팀에서 이적 한번 없이 꿋꿋이 연변팀을 고수해온 그가 더 ‘우직해’보이고 또 그래서 연변팀의 ‘의리’의 사나이로 불리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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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연변주로력모범’에 당선된 윤광선수. 

 

“나서 자란 곳이고 바로 이 곳에서 축구를 알게 되고 또 프로선수로 뛰게 되여서 도무지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리유는 짧았지만 그가 17년 동안 오로지 연변팀만을 고집해온 진심이 담긴 말이다. 

 

현재 그는 2년 남짓이 되는 동안 리그를 뛰지 못했지만 팀을 응원하고 선수들의 단합을 다지는 맏형으로서의 역할만은 한시도 드팀이 없이 해왔다.

 

현재는 자신의 재능을 후배들에게 깡그리 전수해주련다며 고향의 후비인재양성에 남은 여력을 쏟고 있는 윤광, 그에게 있어서 축구란 곧 고향이고 축구가 없는 고향은 단 한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단다. 

/길림신문 김룡 김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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