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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40년] 개체호: 개혁개방 나에게 기회와 용기를 주었다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인민넷 ] 발표시간: [ 2018-10-29 16:44:39 ] 클릭: [ ]

절강성 온주시 인민서로에 있는 한 가게가 특별히 눈에 띈다. 간판에 ‘온주시화매복장보조재유한회사’란 글자가 적혀있는데 창시인은 장화매이다. 장화매는 개혁개방 후 개체공상호 영업허가증을 첫 사람으로 받은 개체호이다.

1980년 12월 11일, 19세 나는 장화매는 온주시공상국으로부터 번호가 10101호인 영업허가증을 받았다. 영업허가증은 붓으로 글을 썼는데 거기에는 장화매의 사진도 붙어있었다. 이는 개혁개방 후 제일 처음으로 발급한 개체공상호 영업허가증으로서 개혁개방 과정을 견증한 귀중한 상표이기도 하다.

“형제자매 7명이였는데 부모들이 번 돈으로 생활하려면 엄청 부족했지요. 저희가 막내라 사업배치하는데는 저의 몫이 있을 수 없지요. 장사를 할 수 밖에 없지요.”

1979년말에 장화매는 집 문앞에 난전을 벌이고 단추, 바느실, 시계줄 등을 팔았다. “그 때는 마음대로 장사하지 못하게 하는 세월이라 숨어다니며 돈을 벌었어요. 당시는 국영기업에서 근무하는 것이 가장 체면이 서는 일이였지요. 동창들이랑 친구들은 제가 장사하는 걸 보면 자기네들이 되려 부끄러워했어요. 길을 가도 난전을 벌이는 나를 보고 못난이라고 뒤에서 손가락질해댔지요.”

당중앙 11기 3차 전원 회의가 소집된 후 온주사람들은 먼저 시장개혁에 뛰여들었다. 1980년 12월 11일, 장화매는 온주시공상국 고루공상소로부터 영업허가증를 받고 합법적인 개체호로 되였으며 이리저리 숨어다니며 장사를 할 필요가 없게 되였다.

복장 보조품을 팔고 가방, 신발도 팔았다. 장화매는 여러번 창업을 시도했고 온주에서 가장 일찍 ‘만원호’로 된 사람들중의 한명이였다. 실패도 있고 밑지기도 하고 빚도 지기도 했다. 1995년에 장화매는 다시 단추도매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견지하고 있다.

장화매는 줄곧 개체호로 있을 생각이였으나 정책이 점점 좋아지면서 그의 장사 규모도 점점 더 커졌다. 2007년 그는 회사를 차리고 회장으로 되였다.

수년래 장화매는 ‘봉사 제일’이란 리념을 지키고 제품 품질을 보장하며 진심으로 고객을 대한 보람으로 업내에서 이름을 날리게 되였다. 년 판매액이 수백만원 된다. 단추, 지퍼 등을 경영하는데 전국 여러 곳에서 팔리고 있다. “과거 고객은 가게에 와서 물건을 가져갔지만 지금은 거개가 인터넷으로 주문한다.”고 장화매는 말한다.

장화매는 새로운 업종 상태를 따라야 한다며 아들이 그의 뒤를 잇도록 해 젊은이들의 사유로 회사를 경영하게 한다고 밝혔다.

“개혁개방은 나에게 기회와 용기를 주었다.” 장화매는 시대가 변화되고 기회도 변화되고 있지만 온주사람들이 고생을 마다하고 분발하며 남에게 뒤떨어지려 하지 않는 정신은 종래로 변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출처: 인민넷 /편역 길림신문 홍옥 

http://politics.people.com.cn/n1/2018/1029/c1001-303673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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