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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칼럼] 무덤, 그 을씨년스러운 무덤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09-17 15:58:39 ] 클릭: [ ]
 우상렬
인간의 주검처리는 하나의 문화이고 큰 학문이다. 바로 장례문화가 그렇다. 따라서 삶 만큼이나 중요시되여왔다.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토장을 하다가 새 중국이 성립된 후 화장을 법적으로 규정했다. 주은래, 등소평 등 중앙의 고위급 간부들이 유언까지 쓰며 솔선수범했다. 사실 화장은 불교에서 많이 행하던 장례문화였다. 과학적이고 위생적이며 합리적인 면이 있기에 국가법으로 정하게 된 줄로 안다.

그런데 지금 이 국가법까지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새 세기 초반에 사천 성도지역에 얼마간 머문 적이 있었는데 어쩌다 시골 쪽을 다녀보니 여기저기 무덤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웠다. 그 때 나는 그래도 우리 조선족이 사는 연변, 연길은 무덤 하나 볼 수 없이 깔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연변, 연길에도 늘어나는 것이 새 무덤이다. 가끔 등산하면서 산기슭에 이런 무덤들이 무질서하게 여기저기 널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분들은 ‘내 산에 묻는데 뭐가 잘못된 것’인가고 반문한다. 그리고 모아산삼림공원 안에도 무덤이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다. 바로 등산길 옆에 말이다. 참말 기분이 잡친다. 등산길에 신선한 공기를 마시려다가 음산한 분위기를 느끼게 되니.

이렇게 기를 쓰며 토장하는 것은 땅속에 묻혀야 안식한다(入土爲安)는 낡은 장례문화의식이 뿌리 깊기 때문이다. 땅속에 묻히지 않으면 허망 나도는 주검처럼 가장 비참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 인간의 존엄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배려가 없지 않아있다. 호랑이도 죽으면 가죽이라도 남기는데 사람은 죽어서 무덤이라도 남겨야 이 세상에 온 흔적이 있게 된다는 관념이 가미한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고리타분한 생각이다. 사실 사람이 이 세상에 와서 흔적을 남기는 데는 전통적인 큰 업적을 이루는 것(立功), 인간의 사표가 되는 것(立德), 훌륭한 저술을 하는 것(立言)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방도가 아니겠는가. 진정으로 立功, 立德, 立言했을 때 사람들이 세세대대로 외우는 것, 이 자체가 영원한 기념비이다.

사실 누구나 토장한다면 좁은 이 땅덩어리가 문제이다. 지금 어디나 땅은 좁고 사람이 많기에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밀어내는 형국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요즘 좀 생활이 넉넉해지니 저 세상 가서 잘살라고 이것 저것 다 챙겨주고 크고 호화로운 무덤을 쓰며 집안의 부를 비기고 신분을 과시하는 현상이 만연되고 있다. 산 사람이 사는 것도 힘든데 무덤 때문에 자연을 파괴하고 상처받아야 한단 말인가.

또 화장을 거부하는 것은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를 손상없이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관념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살아서 이렇게 해야지만 주검에까지 이것을 적용하는 것은 좀 무지막지하다.

우리는 각 민족, 각 지역의 장례문화를 존중해야 한다. 주검을 칼탕을 쳐서 독수리에게 먹이는 천장이든, 물에 띄워보내는 수장이든, 나무 우에서 말리우는 풍장이든… 그것이 하나의 문화인 만큼.

그런데 문화도 시대와 더불어 과학성, 합리성을 가미하며 발전한다. 하여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며 수목장이요, 잔디장이요, 가족장이요 하는 많은 새로운 장례문화가 생겨나고 있다. 우리도 이런 새로운 장례문화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서로 교류하고 보완하면서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보편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길림신문/ 우상렬(연변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