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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뻐스 21] 한총령 홍색관광구에 피빛 단풍 타오른다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09-30 20:27:52 ] 클릭: [ ]

진한장렬사릉원에서 항일가요를 높이 부르는 항일가요합창단

9월 26일, 중국조선족항일가요합창단에서는 중국렬사기념일(9월 30일)에 즈음하여 돈화시에 위치한 한총령(寒葱岭)홍색관광구를 찾아 항일렬사들의 선혈로 물든 전적지를 답사하면서 용사들의 영용한 항일투쟁정신과 그 위혼을 높이 우러렀다.

홍색관광구에 위치한 진한장렬사릉원에는 동북항일련군 장령 진한장(陈翰章 만족)의 짧고도 비장한 일생을 전시한 진한장기념관이 있다. 1913년 6월 14일 돈화현 성서반대하의 한 농민가정에서 태여 난 진한장은 총명하고 대의에 밝은 청년으로서 돈화 오동중학을 최우수성적으로 졸업하고 16세에 돈화현립제1소학교 교원으로 근무하였다. 1931년 9월 23일 일제가 돈화를 점령하자 진한장은 항일구국 최전선으로 달려갔으며 점차 일제의 중국침략에 맞서 싸운 동북항일련군 장령으로 성장하였다.

진한장기념관 일경

1936년 2월 중공중앙의 항일구국정책과 동북항일투쟁의 발전형세에 근거하여 동북인민혁명군은 동북항일련군으로 개편된다. 당시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총사령에 양정우, 정위 겸 부사령에 위증민이며 제1방면군 지휘에 조아범, 제2방면군 지휘에 김일성, 제3방면군 지휘에 진한장이였다. 진한장은 선후로 제2군 제2사 참모장, 제2군 제5사 사장을 담임하게 된다.

진한장은 부대를 인솔하여 녕안을 중심으로 하는 길동지역에서 대사하전투, 한총령매복전을 지휘하면서 일제참략자를 유력하게 타격하였다.대사하전역에서만도 일본군 500여명을 섬멸하고 대량의 총과 물자를 로획함으로써 동북항일련군 력사에서 가장 많은 적을 섬멸한 한차례 전투를 치렀으며 잇달아 한총령 매복전을 벌려 일본군 270여명과 자동차 11대, 총과 탄약, 물자를 대량으로 로획하였다.

1939년 10월부터 일제와 위만군은 진한장부대에 대한 집중 포위토벌을 감행하였다. 1940년에 이르러 항일전쟁은 가장 간고한 단계에 처하게 되였다.  1940년 2월 23일 양정우 총사령은 몽강현 전장에서 순국하였고 제1방면군 조아범장군도 희생되였다. 진한장(陈翰章)은 계속 부대를 인솔하여 돈화, 녕안 일선에서 적들을 견제하다가 그해 12월 8일 반역자의 밀고로 적들에게 포위되였다. 그는 부대에 있는 조선족 녀전사들과 전우들을 엄호하다가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그 때 그의 나이는 27세였다.

진한장의 머리를 따다놓고 기념사진을 남긴 잔혹한 일제토벌총부 두목들(자료사진)

일제토벌군은 동북항일련군 장령을 체포한 공을 인정받으려고 진한장의 목을 베여 신경(장춘) 토벌총부에 가져다 보고를 올렸다. 시체는 돈화에서 군중들 앞에 효시되였고 마을사람들은 무덤을 만들어 머리가 없는 진한장의 시체를 묻어놓았다. 장춘에 이송된 진한장의 머리는 장춘의학원 해부실에 보존되였다. 

1948년 해방직전 지하당 사업일군들인 리야광(李野光), 류아광(刘亚光) 등이 양정우와 진한장의 머리를 비밀리에 꺼내 해방군을 통해 할빈으로 호송하였으며 동북혁명렬사기념관(할빈렬사릉원)에 보존하였다. 그후 진한장 탄생 100돐이 되는 2013년 4월 11일, 진한장렬사릉원 준공과 함께 장군의 머리유해는 73년만에 고향에 돌아와 몸체와 하나로 이어져 합장되였던 것이다.

진한장의 죽음이 그토록 애절하였다면 그의 사랑 역시 애달프기 그지 없었다. 동북항일련군 한총령밀영문화전람관의 해설원은 특별히 항일가요합창단 성원들에게 만족 장군 진한장과 조선족 녀대장 오과밀(吴果密)의 사랑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39년 4월 연통산일대에서 있은 일제놈들과의 전투에서 진한장은 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옆에서 함께 진격하고 있던 오과밀 녀대장이 먼저 발견하고 다급한 소리를 질렀다.

허나 항일련군에 약품이 없어 제때에 치료를 받지 못한 진한장의 상처는 그대로 곪아가고 있었다. 간호사가 조금 남은 물약을 가져다 소염치료라도 하자고 하였다. 진한장은 다른 부상병들을 치료해 주라면서 깨끗한 붕대천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총사령 양정우장군의 머리를 베여놓고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는 일본침략자들(자료사진).

진한장은 저가락끝으로 붕대천을 상처속에 힘껏 들이 밀고 관통상이 난 다른 끝으로 붕대천을 꺼내 쥐고는 앞뒤로 밀고 당기며 상처안의 피고름을 빼내고 있었다. 진한장의 얼굴에서는 땀방울이 비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오과밀(吴果密) 녀대장은 눈물을 삼키며 진한장의 얼굴을 닦아주고 있었다. 몰래 눈물을 훔치다 말고 그녀는 문밖으로 뛰여나가 큰 나무에 기대여 엉엉 소리내여 울었다.

그 울음소리에 진한장 장군은 간신히 다리를 끌며 밖에 나와 그녀의 등뒤에 섰다. "이만한 상처는 별거 아니예요. 나 정말 괜찮아요." 전쟁마당의 용맹한 장군은 정감마당에서는 어찌할 바를 몰라 바장이고 있었다. 장기간의 전투생활속에서 영준하고 지혜롭고 용감무쌍한 진한장 장군을 경모의 정으로 바라보는 오과밀 녀대장과 그 마음을 헤아려주는 진한장 장군이였던 것이다. 목숨을 내건 항일전쟁터에서 둘은 마음속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다.

먼 후날 고향마을 사람들이 제공한데 의하면 어느 하루, 저녁 6시쯤 "진한장의 안해"라는 녀전사가 임신한 몸으로 양털조끼속에 쌍권총을 감춰 차고 두전사의 호위를 받으며 진한장의 고향집으로 찾아 왔다고 하였다. 그녀는 양털조끼와 쌍권총을 두전사에게 넘겨주며 그들을 유격대로 돌려보내고 진한장의 아버지 진해와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누는데 가까운 친척들이 기미를 알아채고 문안을 오면서 말이 밖으로 새여나갔다고 한다.

한총령밀영문화전람관에서 진한장의 사적을 소개하고 있는 해설원 류명전

불길한 예감이 든 시아버지는 다급히 마차를 얻어다 며느니를 싣고 날 새기 전에 어디론가 떠나갔다. 그 곳이 3강성 소황구촌부근(지금의 돈화시연명호진과 흑룡강성의 접경지대)이라고 한다. 마을근처의 큰 굽인돌이에서 며느리를 내려주고 즉시 말머리를 돌려 집으로 돌아온 시아버지 진해는 갑작스레 들이닥친 일본순경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적들은 "산에서 내려온 유격대원을 어디에 숨겼느냐? 어서 빨리 내놓으라!"고 혹형을 들이대였지만 굳게 입을 다문 진해에게서 아무런 정보도 얻어낼 수가 없었다. 

  

한총령(寒葱岭)은 송화강과 목단강의 분수령으로서 20세기 30년대 동북항일련군의 주요밀영집결구이다. 1935년부터 동북지역의 항일무장부대들은 한총령을 중심으로 항일밀영을 설치하기 시작하였다. 이곳에는 지금도 밀영터 3개 곳과 기타 유적들이 보존되여 있다.

이야기를 듣던 합창단 단원들은 임신부와 아이에 대해 해설원에게 다그쳐 물었다. 하지만 그 대답은 실망에 가까왔다. "며느리는 몸을 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의 행방은 모른다고 합니다. 당시 환경에서 평민집에 맡겨 키우면서 이름도 성도 바뀌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어머니가 나중에 조선으로 데려갔을 수도 있고 또는 아이는 죽었을 수도 있다는 여러가지 추측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 진한장 장군의 후세에 대해서는 하나의 수수께끼로 남아있다고 했다.

해설원은 계속하여 "어제날 항일투사들은 일본제국주의는 기필코 패망하고 세계반파쑈전쟁은 기필코 승리할 것이라는 굳은 신념을 안고 청춘도 사랑도 생명도 다 바쳐 싸웠습니다. 그들은 비록 광복의 그날도, 오늘의 행복한 생활도, 한총령의 불타는 단풍도 보지 못하지만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들의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절대로 그들을 잊을수 없습니다. 이 자리에서 진한장렬사앞에 경례를 드리는 것으로 그 령혼을 위로함이 어떻겠습니까?"라고 제의하여 합창단 단원들은 진한장의 머리유해 사진 앞에서 크게 머리를 숙이며 숙연히 경례를 올렸다.

 

울긋불긋 단풍이 물든 한총령에 우뚝 솟은 항일영웅기념비

혁명선렬들을 기리고 그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사회주의새시대 위업을 완성하려는 전국인민들의 결의는 기세드높다. 항일투사들의 선혈로 물든 한총령밀영전적지는 지금 한창 피빛 단풍이 타번지고 있다. 그 사이로 '홍색관광' '밀영문화'의 기발을 든 인파가 몰려들고 있다. 중국조선족항일가요합창단 단원들은 여기서 또다시 격정을 불사르며 중국인민해방군 군가를 높이높이 불렀다.

"앞으로 앞으로 우리 대오는 태양 따라 앞으로..."

/ 길림신문 김청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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