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독서감상록]독서는 인생을 개변시킨다

편집/기자: [ 최화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08-30 11:03:52 ] 클릭: [ ]

나는 어릴 때 불행하게도 천연두에 걸렸다. 그 당시 의료 수준이 락후한 데다 집안 형편도 넉넉치 않은지라 잘 치료를 받지 못해 평생 얼굴에 흉터 자국을 남기게 되였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더구나 외모콤플렉스에 시달렸고 따라서 대인 관계도 무척 힘들어졌다. 성격이 무뚝뚝해지고 차츰 소극적인 인간으로 변해갔다. 스스로 자꾸 소외감이 느껴져 얼마나 부모님을 원망했는지 모른다.

고중시절 한학급에 있던 친구한테서 “대학 갈 때는 인물도 본다.”는 말을 듣고 고지식한 나는 공부해도 소용없다는 생각에 공부를 등한시하였고 나중에는 심각한 사상고민으로 신경쇠약에까지 걸렸다. 게다가 가정형편도 좋지 않은 데다 동생까지 중학교에 입학하는 바람에 학비를 감당할 수 없어 나는 아예 고중을 중퇴하고 농사군이 되였다.

그렇게 세월은 하루하루 흘러갔고 나도 손녀를 본 나이에 이르렀다. 손녀 공부 때문에 시내에 이사한 뒤 어느날 우연히 길림지역 문학사랑회를 알게 되였다. 나는 본래 문학에 흥취가 있었던 지라 물 본 기러기처럼 반가운 심정으로 문학사랑회에 참가하였다. 그 곳은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로 모인 민간조직이다. 더우기 중학교 어문교원을 하다 퇴직한 분들과 작가 분들도 있어 그야말로 문학공부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새삼스레 문학의 꿈을 키우기 위해 창작의 길을 걷고 싶다는 의욕이 불쑥 들었다. 참으로 나의 인생 역전이였다.

스승을 모시는 데는 나이가 절대 걸림돌이 아니다. 나는 문학사랑회 성원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든 적든 상관하지 않고 무작정 선배님이라고 부르면서 매일 그들에게서 문학지식을 배우고 부지런히 글을 썼다. 용기를 내서 잡지사와 신문사에 투고도 했더니 고맙게도 몇군데서 실어주기까지 했다. 초기 문학 지망생에 대한 크나큰 격려였다.

나는 신심이 생겼고 사람은 잘나고 못나고를 떠나서 외모보다 한가지 재능이 있어야 하며 아무리 외모가 추한 사람일지라도 남한테 존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그 때로부터 나는 독서도 하고 글 쓰는데 열중하였다.

나는 글쟁이가 되려면 글 쓰는 련습이 필요하겠지만 우선 지식면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에 조선글로 된 명작이며 세계력사, 중국력사, 지리, 철학, 문학리론 등 문학에 관한 책을 사서 닥치는 대로 통독했다. 그외에도 매년마다 《연변문학》, 《도라지》, 《로년세계》, 《길림신문》을 주문해보았다.

그렇게 두루두루 모은 책이 500여권이나 된다. 문학사랑협회에 참가한 지 금년에 8년째인데 그동안 하루 평균 2, 3시간 독서를 견지하였다.

나는 성공한 인생이 되기 위해 경전작이나 위인들의 성공학을 고심히 열독하고 그 가운데서 좋은 경구나 잠언이 있으면 수첩에 기록하고 또 중심사상을 필기하였다.

지금 나의 책궤에 책이 가득차있다. 나는 이 책들을 보배처럼 여기고 있다. 왜냐 하면 이런 책에서 내가 몰랐던 많은 문학지식과 인생에 대한 도리를 습득할 수 있기 때문에 책은 정말로 나에게 말없는 선생이다.

그리하여 독서는 이미 습관화되여 하루도 책을 읽지 않으면 마치 무엇을 잃어버린듯 아쉬운 감이 난다.

속담에 ‘굼벵이도 굼불재주가 있다’더니 가방끈이 짧은 농민으로서 부지런히 문장을 투고하여 《길림신문》공모상도 받았고 입선작이 수차나 되며 수필 수편이 《도라지》 등 잡지에 발표되였다. 또 사비로 수필집 100권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상을 타고 작품이 정식 간물에 투고되였다는 소식이 올 때마다 감격과 흥분으로 가슴이 벅찼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자신이 자그마한 성과라도 이룰 수 있었던 까닭은 남들이 차나 커피를 마시는 시간에 독서를 하고 글을 썼기 때문이다.

아직 작가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께 농민작가라고 존대받고 있다.

지금 칠십 고령의 나이지만 삶의 가치를 위해 부지런히 독서하고 글농사를 지어서 작가가 되려고 한다.

/양상태(길림)

0

관련기사 :
 
연변부동산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